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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디톡스

디지털 탈출이 곧 업무 탈출일까? < 일과 삶의 경계 실험기 >

< 목  차 > 
(서 론)  디지털을 끄면 일이 사라질까?
1. ‘항상 연결됨’의 피로, 우리는 언제부터 일을 멈추지 못하게 되었나
2. 디지털 단절의 첫날, 손에서 사라진 건 기계보다 책임감이었다
3. 일과 나를 분리하는 법 < 연결이 아닌 경계 설정의 연습 >
4. 일의 리듬을 다시 설계하다 < 디지털 없이 효율 유지하기 >

디지털 탈출이 곧 업무 탈출
디지털 탈출이 곧 업무 탈출

 

디지털을 끄면 일이 사라질까?

휴대폰을 꺼봤자 일이 사라지지는 않잖아.
처음 디지털 디톡스를 시도한다고 했을 때 들었던 말이다.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업무는 계속되고, 메일은 쌓이고, 업무 카톡은 늦게 확인하면 민폐가 되는 구조.
그래서 디지털을 끄는 순간 단순한 기기 단절이 아니라 업무 회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깨달았다.
진짜 문제는 기기가 아니라 일과 삶이 뒤섞여 있는 디지털 환경 그 자체라는 사실을.
스마트폰을 켜는 순간부터 업무가 시작되고 침대 위에서도 메일을 확인하며 퇴근 후에도 실시간 응답을

기대받는다. 이 구조 속에서 우리는 언제까지 일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게 되어버렸다.

이 글은 내가 디지털을 잠시 끊어내며 일과 삶의 경계를 다시 세우는 실험을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디지털 단절이 정말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는지 혹은 오히려 회복을 돕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는 생각보다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디지털 탈출이 곧 업무 탈출은 아니며 오히려 업무를 회복시키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1. ‘항상 연결됨’의 피로, 우리는 언제부터 일을 멈추지 못하게 되었나

디지털 기술은 원래 업무를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도구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언제 어디서나가 항상 해야만 하는 압박으로 바뀌었다.
카카오톡, 슬랙, 이메일, 그룹웨어는 즉각적인 피드백을 요구하고 대부분의 조직은 24시간 내 응답이 

정상이라는 묵시적 룰 속에 돌아간다.

문제는 이런 연결 상태가 우리의 뇌를 끊임없는 대기 모드로 유지시킨다는 점이다.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도 곧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긴장감이 계속된다.
결국 우리는 일을 멈춘 게 아니라, 잠시 멈춘 척만 하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나는 이 구조 속에서 점점 업무 피로와 일상의 경계가 사라지는 문제를 느끼기 시작했다.
퇴근 후에도 울리는 알림, 휴일의 업무 지시, 팀의 실시간 반응 속도에 뒤처질까 불안해지는 감정.
이 모든 것이 디지털을 통해 확대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연결이 과연 ‘생산성’을 높이고 있을까?, 혹은 그냥 나를 소진시키고 있을 뿐일까?

 

2. 디지털 단절의 첫날, 손에서 사라진 건 기계보다 책임감이었다

처음으로 하루 반나절 스마트폰을 끄고 일과를 보내보기로 한 날 나는 의외로 기기보다 책임감이라는

감정이 더 무거워졌음을 느꼈다.
알림을 끄는 건 쉽지만 혹시 팀원이 나를 찾지는 않을까?, 지금 확인 안 하면 누군가 불편해질까? 같은

불안과 죄책감이 밀려왔다.

이게 바로 디지털 도구가 아니라 디지털을 통한 관계와 책임의 무게였다.
우리는 디지털을 통해 단순히 정보를 주고받는 게 아니라 상호 기대, 속도에 대한 응답, 역할 수행의 

책임까지 교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4시간 후 내 스마트폰은 조용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놀랍게도 내가 끊은 그 시간 동안 업무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고 사실 내가 바로 응답하지 않아도 

진행되는 구조가 대부분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 경험은 디지털 탈출이 곧 업무 탈출이 아니라 업무의 오버컨트롤을 멈추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내가 놓았던 것은 일이 아니라 과도한 통제감과 과잉 책임감이었다.

3. 일과 나를 분리하는 법 < 연결이 아닌 경계 설정의 연습 >

디지털 디톡스를 시도하며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내 일과 나 자신 사이에 경계선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동안은 업무용 기기와 사적 기기가 동일했고 하나의 디지털 환경 안에서 ‘업무-개인-관계’가 뒤섞여 

있었다.
그러나 디지털을 잠시 멈추자 나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됐다.
“지금 이건 진짜 내가 원하는 일이야?”, “내가 반응하는 속도는 정말 필요한가?”
이 질문은 자연스럽게 업무를 단순히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하고 리듬을 조절하는 시각으로 바뀌게 

만들었다.

디지털 없이 일한다는 건 기술을 버리는 게 아니라 일을 마주하는 방식과 구조를 재설계하는 것이었다.
시간 단위로 일정 관리하는 대신, 블록 단위로 집중 시간을 나누고 실시간 회신 대신 정해진 시간에 

업무를 점검하고 전달하는 습관을 만들었다.

그 결과, 단순한 반응형 인간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일의 흐름을 설계하는 주체성이 회복되었다.
이건 디지털을 껐기 때문이 아니라 디지털의 사용 방식과 나의 일 관계를 다시 설계했기 때문이었다.

4. 일의 리듬을 다시 설계하다 – 디지털 없이 효율 유지하기

많은 사람들은 디지털을 꺼내면 생산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지속 가능한 리듬’을 만들게 되었다.
일이란 결국 집중, 판단, 실행이라는 사이클을 반복하는 행위다.
이 세 가지를 방해하는 것이 바로 디지털 과잉 연결이었다.

디지털 디톡스 기간 동안 나는
✔ 업무 메신저 확인 시간을 오전/오후 2회로 제한했고
✔ 알림은 모두 비활성화한 채 메모와 할 일 중심으로 집중 구간을 확보했다.
✔ 회의도 짧고 명확하게, 서면 중심으로 대체했다.

그 결과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하루 일과가 줄어든 게 아니라 정리된 형태로 완성도 있게 마무리되는 일이 늘어났다.
디지털은 도구이고, 도구는 목적이 아니다.
디지털 없이도 일은 된다. 단, 그 방법을 의도적으로 설계해야만 가능한 구조라는 걸 실감하게 됐다.

 

디지털 탈출은 업무의 포기 아닌, 방식의 재구성이다
디지털 탈출이 곧 업무 탈출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디지털에서 잠시 벗어나야 비로소 일의 본질이 보이고, 내가 그 일을 어떻게 할지를 

주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
우리는 기술을 통해 일할 수 있지만 기술에 종속되어 일하는 순간부터는 주체성을 잃는다.
디지털 디톡스는 업무를 단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업무를 재정의하고, 삶과의 관계 속에서 건강하게 재구성할 기회를 제공한다.

일과 삶의 경계는 스스로 정해야 지켜진다.
디지털은 경계선을 모호하게 만들지만 그 안에서도 우리는 스스로의 사용 방식을 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주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